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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직공예이야기

제목

인도네시아의 영혼 바틱 이야기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03
첨부파일0
조회수
625
내용
▲  손으로 그려진 이 바틱은 사롱이며 자바 귀족 Raden Adjeng Kartini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롱은 말레이 군도의 영향을 받은 힌두 자바인들의 복장으로, 이 섬세한 꽃다발과 나비가 디자인된 면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카르티니는 이 옷을 즐겨 입었으며 서서히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전통의상으로 발전하였다.   ⓒ 오산시민신문


인도네시아에서 바틱(batik)을 모르고 이들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바틱(batik)을 국민들의 정장으로 명명하고 혼란스런 인도네시아의 통합을 위해 이용했다면, 2대 대통령 수하르토는 바틱(batik)의 상업화를 이루며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현 대통령 조꼬위도도는 매주 금요일을 바틱(batik)의 날로 정하고 입기를 권하고 있다. 이렇듯 바틱(batik)은 지나간 유물로서가 아닌 현재까지도 문화에 깊숙이 영향을 주며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바틱(batik)은 12세기 자바 섬 특히 솔로와 족자카르타에서 유래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는 팔렘방이나 잠비, 봉꿀루 등 수마트라에서도 발달되어 생산된다. 바틱(batik)의 어원은 ‘ambatik’인데 ‘천위의 작은 점들’이라는 뜻을 가진다. ‘tik’은 ‘그리다’, ‘쓰다’는 의미이다.

 

인도네시아에 다른 전통적인 공예품처럼 바틱(batik)의 기원도 확실하지 않다. 아주 이른 시기에 인도에서 전해졌다고도 하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진 바틱(batik)은 세계에서 가장 전통적이며 아름답고 독특한 직물 중 하나로 꼽는다.

 

여러 세기에 걸쳐 다양한 용도와 디자인과 품질을 보여주는 인도네시아 바틱(batik)은 이 지역의 날씨, 사용할 수 있는 섬유뿐만 아니라 역사와 무역, 식민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신속함까지 모두 반영한다. 역사적으로 토속적인 디자인을 고수하는 고산지대보다 개방된 해안 지역 사회에서 외국의 영향이 두드러짐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바틱(batik)의 가치는 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내의 중국과 힌두?자바 문화가 녹아 있는 깊은 철학적 의미와 전통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바틱(batik)을 만드는 2가지 요소는 밀랍을 사용한 방염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과 독특한 디자인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송진을 섞어 만든 밀랍을 짠팅(canting)이라 부르는 작은 국자에 넣고 조금씩 흘려가며 직물 위에 문양을 그린다. 이 후 염색물에 담그면 밀랍이 묻은 곳은 방염이 되고 나머지 부분이 염색된다.

 

1차 염색이 끝나면 밀랍을 제거한 후 다시 2차 문양에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문양과 색이 다양할수록 밀랍코팅과 염색은 반복된다. 모두 바늘같은 작은 국자를 이용하여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하나의 바틱(batik)을 완성하는 데 한 달씩 걸리기도 했다고 하니, 높은 신분의 사람들에 소유물이었을 것이다. 이를 대중화 시킨 것이 짭(cap-문양도장)의 발명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바틱(batik)의 산업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후 화학염료의 등장과 생산의 산업화로 바틱(batik)을 프린트로 표현하게 되어 다량의 생산이 가능해져 패션으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또한 다양한 디자인과 문양의 시도와 지도층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바틱(batik)은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다.

 

인도네시아 바틱(batik)을 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자바의 귀족 까르띠니(1879년~1902년) 여사이다. 카르티니는 네덜란드 식민지 통치 중 1879년 4월 24일에 Mayon에서 태어났으며 여성 교육과 여성해방 그리고 여성인권 존중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그녀 나이 23세 때 여성만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여 글 읽기와 수공예 제작법을 가르쳤다.

 

이는 획기적인 여성교육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 역시 안타깝게도 사회적 금기로 인해 엄격하게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리고 1904년 카르티니는 Rembang왕자와 결혼하여 4번째 부인이 되었으나, 아기를 낳다가 그녀의 나이 25세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1964년에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되었으며 생일은 국가적으로 ‘카르티니의 날’로 선포되었다. 매년 그녀의 생일에는 여자 아이뿐 만 아니라 남자 아이들까지 전통의상 바틱 사롱을 입으며 그녀를 추모한다. 더불어서 최고 의상 뽑기 대회도 개최하고 노래도 부르며, 카르티니의 날을 경축하고 있다.

 

그녀가 직접 그린 바틱(아래사진)을 보면 전통의 문양 보다는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강점이 시작되며 바틱(batik)은 다양한 나라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발전하고 대중화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왕족이 유지되고 있는 찌르본과 족자카르타 지역에선 왕족에게만 허용되는 문양이 남아있다. 자카르타에서 다양한 바틱(batik)을 보고 싶다면 국립박물관에서 5분 거리에 떨어진 직물박물관을 권한다. 아름다운 바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고, 바틱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 국립박물관 해설서

 

▲  이연주   ⓒ 오산시민신문

 


 

 

 

 

 이연주 (자카르타 국립박물관 해설사 )

 

출처: http://osannews.net/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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