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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이야기

제목

인도네시아 고대 금공품의 수집과 연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30
첨부파일0
조회수
612
내용

​출처: http://www.iseas.kr/index.php?mid=rc1&listStyle=viewer&document_srl=1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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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고대 금공품의 수집과 연구

by 광명원 posted May 09, 2015
 

   고대부터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은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의 산출지로 유명했다. 지금도 자바와 수마트라섬에서는 금광이 확인되며 상당수의 금이 산출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아마도 일찍부터 금이나 은, 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든 공예품들을 제작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하게 이러한 금속기의 제작이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7세기 이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된 이후부터, 각지에서 출토된 고가의 금, , 동으로 제작된 희귀한 금속공예품들은 유럽의 호사가들에 의해서 열광적으로 수집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인들의 수집은 고대 유물들이 가진 역사적, 문화사적 가치에 대한 관심보다는, 금이나 은, 보석과 같은 재료 자체가 가진 재화적 희소성과 물질적 가치에만 관심을 두고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그동안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 각지에서는 다양한 고대의 금속공예품들이 종종 출토되고 있는데, 근세기 이후에 출토된 신발견 유물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의 고대 금속공예품, 특히 금으로 만든 금공품의 존재와 역사적 위상에 대해서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의 금공품 중에서도 특히 수준높은 유물들은 주로 자바섬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하는데, 자바섬 출토 고대 금제 공예품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캐나다의 헌터 톰슨 부부에 의해서 수집된 유물이다. 이 부부의 수집품은 현재 미국 예일대학의 헌터 톰슨 소장품(Hunter Thompson Collection)으로 소장되어 있으며, 이 유물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의 고대 금속공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0년 존 믹식(John Miksic)은 이 유물들을 중심으로 고대 자바의 금(Old Javanese Gold)이라는 책을 저술했으며, 이 책이 출간된 이후, 톰슨 소장품은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공개되었다. 미국 예일대학 박물관에 기증된 것은 2006년과 2008년 등 두 번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존 믹식은 2011년 이 유물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저서를 대폭 수정하여 고대 자바의 금 예일대학교 미술관의 헌터 톰슨 소장품(Old Javanese Gold : The Hunter Thompson Collection at the Yale University Art Gallery)이라는 제목으로 개정증보판 서적을 발간하였다. 이 개정증보판에서는 그동안에 새롭게 발견된 동남아 각지의 발굴조사품들을 추가하여 재검토하여 소개하였다. 그의 개정증보판 서적은 지금까지도 고대 인도네시아 금속공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서이다.

   톰슨 소장품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소장 유물의 수준이 상당히 높지만, 돈을 주고 구입한 수집품이라는 한계 때문에 정확한 출토 지역이나 편년은 어려운 편이었다. 톰슨 소장품 이외에도, 싱가포르 아시아 문명박물관, 네덜란드 헤이그 시립박물관, 네덜란드 라이덴의 왕립민족학박물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트로펜뮤지움 등에도 고대 자바섬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뛰어난 양식의 금제 공예품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박물관 및 개인 소장품들은 모두 구입품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편년이나 역사 · 문화사적 의의를 논의하기도 어려운 편이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1990년과 1991년에 중부 자바의 작은 마을인 워노보요(Wonoboyo)에서 우연히 다수의 금제 및 기타 금속제 공예품이 발굴되면서 좀 더 본격화된다.

 

   인도네시아 고대 금공품의 수집과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워노보요 출토품의 발견이다.

   워노보요는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 프람바난 사원군의 동쪽에서 5km 정도 떨어진 클라텐(Klaten)군 조고날란(Jogonalan)읍 플로소쿠닝(Plosokuning) 마을의 한 지역 이름이다 19901017일 이 마을에 사는 칩토 수와르노(Cipto Suwarno) 여사는 인부를 고용하여 자신의 밭을 경작했는데, 밭을 갈던 인부들이 땅속에서 엄청난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이 유물들이 발견되어 신고를 하자, 인근에 있는 중부 자바의 가자마다 대학 고고학과에서는 발굴팀을 꾸려서 유물 발견 지역을 정식으로 발굴조사하였다. 이러한 추가 발굴조사를 통하여,  19901126, 19912월 등에 걸쳐 또 다른 유물들이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워노보요 지역에서는 전체 3회에 걸쳐서 다량의 금공품을 비롯한 귀중한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으며, 이 유물들 중에서 대부분의 금은제 공예품을 포함한 주요 유물들은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으로 보내졌다.

   당시 발굴과 조사를 담당했던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의 학예사 와효노 마르토위크리도(Wahyono Martowikrido)에 의하면, 발굴 당시 맨 처음에는 땅속 2.75m 깊이에서 중국제로 추정되는 도기(陶器) 세 개를 발견했다고 한다. 세 개의 도기는 높이 3040cm 가량에 녹갈색 유약이 입혀진 항아리로서, 각 도기 안과 주변에서 다수의 금은제 공예품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각 유물들의 상세한 상태와 정확한 수량은 아직까지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발견된 유물의 무게는 금제품 총량 12.5kg, 은제품 총량 3.95kg에 달했다.

   워노보요에서 발견된 금속공예품들의 종류는 반지,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의 다양한 장신구류, 접시, 대접, 숟가락 등 다양한 그릇류, 금은제 동전류 등이다. 당시 수습 발굴조사에서는 유물 출토지 주변에서 벽돌로 쌓은 건물 기초부와 테라코타 편, 동물뼈 등이 발견되었으므로, 유물이 발견된 지점은 거주지 인근이거나 중앙부로 추정된다.

  이후 인근의 땅속에서 또다른 녹갈색 유약이 입혀진 중국제 도기가 출토되었는데, 이 도기 안에는 6396개의 금제 동전과 각종 금은제 유물이 들어 있었다. 이 안에서 발견된 금의 총 무게는 15kg 이상이었다.

  세 번째로 발견된 것은 역시 인근의 땅속에 묻혀있던 중국 당나라제 도기와 커다란 청동제 용기였다. 이 그릇들 안에서는 역시 다양한 금은제 공예품들이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금의 총 무게는 4.8kg이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워노보요 출토품에 대한 학술 발굴보고서가 아직까지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굴 당시의 유적 상황이나 유물 출토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간단히 발간된 약보고서에서는 당시 발견된 금과 은의 무게 및 주요 유물의 물질적 가치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고고학적 관점에서의 층위나 출토 상태, 공반 유물에 대한 학술적 보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워노보요 출토품들은 구체적인 발굴 상황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를 진행하기에 미진한 부분이 많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워노보요 출토품들은 발굴 직후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워노보요 출토품이 본격적으로 서구 학계에 소개된 것은 1993년 7월 암스테르담 트로펜뮤지움 주최로 열린 자바섬의 금제 장신구 특별전 관련 세미나였다. 이 세미나에서 와효노는 처음으로 워노보요 출토품의 현황을 국제학계에 소개했으며, 명문의 서체를 통하여 이 유물들이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반으로 편년됨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의 연구는 지금까지도 워노보요 출토품에 대한 가장 종합적이며 자세한 소개문으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후 워노보요 출토품들은 1995년 프랑스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군도의 황금』 특별전, 같은 해 독일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특별전, 1997년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서 열린 『고대 왕국의 지보(至寶)』 특별전, 1999년의 호주 사우스 브리스번과 시드니에서 개최된 『인도네시아의 황금』 특별전 등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소개되었다. 또한 이들에 대한 연구가 1995년부터 국제 학술지에서 본격적으로 발표되기 시작했으며 1996년에는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과 암스테르담의 트로펜뮤지움 주최로 자바섬의 고대 금속공예품에 대한 대규모의 국제 학회가 열리기도 했다.
   1997년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서는 워노보요 출토품이 30여점 이상 출품되었다. 이 특별전을 통해서 일본 학자들은 인도네시아 금제 공예품의 제작기법을 비교적 상세하게 연구하고, 워노보요 출토품들에서 종종 확인되는 “타출한 금판 아래에 흙을 채워넣는 기법”은 고대 인도네시아에서만 보이는 독자적인 기법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라마야나 그릇을 비롯한 몇몇 그릇의 형태 및 제작기법은 중국 당나라 금은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학자들의 견해는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 금속공예 연구에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워노보요 출토품 중에는 당대 금은기와는 상당히 다른 독자적 양식도 보이며 타출한 금판 아래에 흙을 채워넣는 기법도 다른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본 학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워노보요 출토 금제 공예품들은 매우 독자적인 도상과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중부 자바 지역의 현지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고대 동남아시아의 발달된 금속공예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외 특별전 도록 및 출판물에 공개된 워노보요 출토품은 금은제 동전 10점을 포함하여 약 70여점에 불과하다. 와효노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워노보요 출토 공예품들은 박물관 등록번호 8838번부터 9009번까지로, 유물의 종류는 (1)그릇류, (2) 장신구류, (3) 무기류, (4) 동전류 등 네 종류로 나누어지며, 그중에서 금제 동전은 6336점, 은제 동전은 약 600점이라고 한다. 171건의 등록 번호 중에는 이러한 다량의 동전을 포함한 유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출토유물 전체의 정확한 수량은 확인할 수 없다. 동전을 제외한 각종 금은제 공예품은 약 200여점에 달한다고 하므로, 아직까지 상당수의 유물이 미공개된 상태이다.

 

   인도네시아의 고대 금공품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5년 서울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할 때이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개관전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고대 유물 101점을 2년간 특별 대여하여 전시했는데, 이때 자바의 금공품, 특히 워노보요 출토품의 일부가 국내에서 전시되어 주목된다. 이것이 한국내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고대 금공품을 대중에게 공개한 때이다. 이 전시를 통해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한국과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의 교류는 박물관의 상호 인적 교류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립박물관의 교류는 꾸준히 이어졌는데, 특히 박물관내의 인적 교류의 결과로서 2012년에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단독으로 인도네시아의 금속공예품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12년 7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지 열렸던 이 특별전은 『적도의 황금왕국 인도네시아』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으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뛰어난 금속공예품 101건 120점이 전시되었다. 이 특별전은 인도네시아의 발달된 금속공예 문화를 국내 대중들에게 새롭게 알리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동명의 제목으로 출간된 특별전 도록은 고대 인도네시아의 금속공예품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당시 국립제주박물관의 특별전에서 소개되었던 유물들은 인도네시아 고대의 청동기, 불교 및 힌두교 관련 종교용품 및 신상(神像), 중부 자바 지역의 워노보요 출토 금제 공예품 및 각 지역별 전통 공예품 등으로 매우 다양한 종류였다. 이들은 고대부터 발달했던 인도네시아 금속공예의 아름다움과 우수함을 대표하는 작품들이었다. 당시 전시된 유물 중에는 물론 중부 자바 지역의 워노보요 출토 금제공예품들이 5점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외에도 다양한 지역에서 가져온 화려하고 뛰어난 금속공예품들이 상당수 소개되었다.

 

   워노보요 출토품 이외에도 중부 자바에서 출토된 고대의 금속 공예품은 상당히 많지만, 워노보요 출토품만큼 다양한 종류와 수량이 함께 발견된 예는 없다. 또한 워노보요 출토품들은 명문에 의해서 절대 연대가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 경으로 편년되고 있으므로, 인도네시아 고대 유물 중에서는 보기 드문 절대 편년자료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편년이 어려운 대부분의 전세품들은 워노보요 출토품과 비교하여 상대 편년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워노보요 출토품 이외에도 반유마스나 스마랑 등 중부 자바의 여러 지역에서는 유사한 양식의 금제 장신구들이 간혹 출토되었지만, 워노보요만큼 다양한 종류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물들에 보이는 여러 가지 양식적 특징들은 바로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의 중부 자바의 장식미술 양식을 대표하는 것이다.

   워노보요 출토 금은제 공예품에 보이는 가장 큰 양식적 특징은 단조와 타출기법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다수의 공예품에는 타출기법으로 장식한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요철이 심한 고부조의 장식도 상당히 많다. 타출기법으로 장식된 문양들은 대체로 복잡하고 화려한 곡선으로 구성된 꽃과 물결 문양을 바탕으로, 상상의 동물이나 유명한 종교적 서사나 도상 등을 표현한 것이다. 문양의 표현은 제작기법의 발달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화려하고 입체적인 문양 표현은 당시 고대 중부 자바 지역 금속공예의 제작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워노보요 출토품 중에는 동시대의 다른 지역들보다 발달된 고부조의 타출기법이 사용된 예가 많다. 이러한 고부조의 타출기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형태의 철제 정 사용이 선행되어야 하며, 금속 표면이 뚫리지 않을 때까지 금속을 열풀림하면서 정으로 치는 것이 가능하도록 고정시키는 바탕재의 사용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이러한 제작기법과 관련된 유물들이 아직까지 자바 지역에서 출토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어떠한 형태와 재료의 도구를 사용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타출기법은 이미 고대 근동지역에서부터 발전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까지 전래된 중요한 금속공예 기법으로서, 동남아시아에서도 일찍부터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남부 지역에서는 기원후 3∼5세기경에는 이미 인도로부터 발달된 금공 기술이 전해져서 타출기법이나 누금세공기법 등으로 만들어진 금제 장신구들이 현지에서 다수 제작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초기 금제 공예품들도 이미 이 시기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까지는 절대 편년이 가능한 초기의 유물은 많지 않다.
   8∼9세기경까지의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금속공예에서는 타출기법이 널리 사용되기는 했지만, 워노보요 출토품과 비교될만큼 고부조의 화려한 금은제 공예품들은 드물다. 이제까지 여러 학자들은 이러한 단조와 타출기법 양식의 워노보요 출토품들을 중국 당나라 금은기의 영향으로 파악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당나라 금은기를 대표하는 7∼9세기의 서안 하가촌(何家村) 출토 유물이나 법문사(法門寺) 출토 유물 중에서 워노보요 출토품에 보이는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문양과 같은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당나라 금은기의 경우에는 타출기법보다는 어자문기법이나 축조기법과 같은 조금기법으로 세밀한 문양을 평면 위에 새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워노보요 출토 금속공예품을 비롯한 810세기경의 중부 자바 지역 금은제 공예품에 보이는 복잡한 고부조의 장식적 양식을 이해하는 데에는 중국 당나라의 금은기보다는 인도나 스리랑카와 같은 동시대 남아시아 문화와의 관련성에 좀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워노보요 출토 금공품 중에서 장신구나 손잡이 달린 국자 등에 보이는 화려하고 복잡한 타출기법으로 표현된 꽃, 혹은 물결 모양의 유기적이며 입체적인 곡선의 장식 양식은 실제로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에서 전래된 장식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직까지 스리랑카의 금속공예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된 바가 없지만,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기원전후 시기부터 인도의 금속공예 양식을 받아들였다. 스리랑카의 고대 불교 유적에서는 기원후 1∼3세기경에 제작된 금제 스투파형 사리기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는데, 이러한 스투파형 사리기들은 대부분 금판을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기법과 타출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초기 금제 스투파형 사리기의 예들로 볼 때, 스리랑카에서는 이미 기원전후의 시기부터 불교와 함께 단조와 타출 등의 발달된 금속공예 기법을 인도로부터 받아들였다고 추정된다.
   5세기경부터는 인도와 스리랑카, 그리고 중국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해로가 발달해 있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5세기 이후 인도와 스리랑카의 문화를 다양하게 받아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5세기에 인도를 다녀온 법현은 해로를 통하여 스리랑카를 거쳐 중국으로 귀국했다. 당시 스리랑카에는 유명한 불치정사가 있어서 많은 구법승들이 이곳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불교 및 힌두교의 전래와 함께 남아시아의 문화는 인도네시아 각지에 널리 전래되었는데, 아마도 이러한 문화적 영향 아래에서 8∼10세기 경의 중부 자바에서는 인도 및 스리랑카의 장식 미술 양식 및 금속공예 기술을 폭넓게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스리랑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경의 금제 귀걸이는 바로 워노보요에서 출토된 각종 금제 장신구 및 장식품의 선행 양식을 보여주는 예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 귀걸이는 출토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편년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데, 문양이나 양식은 9세기보다는 이른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귀걸이는 동남아시아에서 일찍부터 유행하던 C자형 귀걸이의 변형 양식으로, 금을 주조하여 만들었다. 고리 아래쪽에는 워노보요 출토 금제 국자의 끝장식을 비롯하여 여러 장식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화려하고 복잡한 꽃, 혹은 물결 문양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 문양은 인도에서는 굽타시대 이후로 건축이나 조각의 장식 문양으로 등장한 양식으로, 인도 미술양식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한편, 귀걸이 아래 부분에는 중앙과 끝부분 등 여러 곳에 표면을 마연한 여러 가지 색의 보석을 감입하여 장식해 놓았는데, 보석의 형태는 일정한 형태로 가공한 것이 아니라 원석의 형태를 강조하며 표면을 둥그스름하게 마연한 것이다. 이러한 보석 가공 방식은 역시 인도네시아 자바의 워노보요 출토품에서 보이는 보석 가공 방식과 상통한다. 다만 워노보요 출토품에 사용된 보석들은 일정한 형태의 금판으로 난집을 짜 놓은 점과는 달리, 스리랑카의 귀걸이에서는 작은 발과 같은 형태로 보석을 물리는 방식으로 된 점이 차이가 있다. 이러한 귀걸이가 고대 스리랑카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볼 때, 9∼10세기경의 중부 자바의 장신구를 비롯한 금속공예 양식에는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아시아 장식미술 양식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워노보요 출토품을 비롯하여 고대 중부 자바 지역의 금속공예의 독자적인 제작기법으로 알려졌던 타출기법 공예품의 내부를 진흙으로 채우는 방식도 인도네시아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보기 어렵다. 이미 기원전후의 유라시아 대륙의 몽골 지역에서 타출기법으로 만든 금제나 은제 장식품 내부에 흙을 채우고, 철판이나 청동판과 같은 재질이 다른 금속판을 덧대어 마무리한 예가 있었다.  또한 스리랑카의 여러 유적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금제 불상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어서 주목된다. 스리랑카의 금제 불상들은 얇은 금판으로 앞면, 뒷면을 비롯한 각 부분을 만든 후, 그 안에 흙을 채워 넣어서 완성한 것으로, 워노보요 출토품의 제작기법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러한 기법상의 공통성으로 볼 때, 얇은 금판으로 형상을 만든 후 그 속에 흙을 채워 넣는 방식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같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스리랑카에서 출토되는 금제 불상들의 제작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0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아누다라푸라 지역의 불상이 비교적 이른 예로 생각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금제 불상들은 아누다라푸라 뿐만아니라 스리랑카의 다른 지역에서도 14세기경까지 계속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작기법이 스리랑카에서도 상당히 널리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상의 제작 방식으로 볼 때, 얇은 금판으로 형태를 만들고 내부에 진흙을 채워서 금공품을 만드는 제작기법은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거쳐 동남아시아, 특히 자바 지역으로 전해진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인도네시아 워노보요에서 출토된 각종 금은제 공예품들은 810세기경 발달했던 중부 자바 지역의 고대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의 기초 연구가 미진하며, 금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호사가적, 그리고 식민주의적 낭만의 관점에서 주요 작품만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온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인도네시아 문화의 연구가 식민지시대의 서양 사람과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그들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물론 아직까지 워노보요 출토품 전체에 걸친 상세한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고 주요 유물만을 국내외 전시에서 보물 다루듯이 공개해온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측의 책임도 크다. 앞으로 이 유물들은 전체 유물들을 포괄하여 공개하는 종합적인 연구 보고서가 발간되어야만 좀 더 심도깊은 연구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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